갑질의 왕국에서 벌어진 을들의 유쾌한 반란『콜센터』김의경 문화



 
4년 반 만에 두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4년 반 만에 책을 출간했지만 늘 글을 쓰고는 있었습니다. 첫 책을 낸 2014년에는 많이 쓰지 못했어요. 2014년 말부터 2016년까지 글을 많이 썼는데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았어요. 자꾸 실패하는 느낌이었어요. 2017년 상반기에는 집중해서 글을 썼습니다. 덕분에 비슷한 시기에 두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장편소설 『콜센터』(광화문글방)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콜센터』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4~5년 전에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때 신춘문예 당선통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직 콜센터에 다니고 있을 거예요. 그곳에서 일할 때 언젠가는 이곳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쓴 원고는 실패했어요. 시간이 흘러 2017년에 다시 쓸 때 그곳의 옥상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남자상담사 두 명의 대화였는데요, 이런 식의 대화였어요. 너 왜 연애 안 해? 연애에 쏟을 감정이 어디 있냐? 진상한테 쏟을 감정은 있고 연애에 쓸 감정은 없냐? 그 대화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어요. 삼포세대라고 하잖아요. 그 청년들의 모습이 감정노동에 시달리지만 정작 연애는 할 수 없는 요즘 청춘의 현실이다 싶었죠. 그곳에서 일하면서 저를 심하게 괴롭힌 블랙컨슈머의 주소를 적어놓고 언젠가는 찾아가서 돌멩이를 던져주겠다, 복수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또 수십 통의 전화를 받다보니 가슴이 답답하니까 늘 바다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곳에 있는 청춘들을 모두 바다에 풀어놓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진상고객에게 복수하려고 해운대로 가는 다섯 청춘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 같아요.
 
경험하신 콜센터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저는 17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갑질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블랙컨슈머가 많잖아요. 콜센터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서인지 더 그런 상황이 많은 것 같았어요. 블랙컨슈머 중에는 평범한 우리 이웃도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어요. 심지어 어린아이가 전화를 해서 욕을 하고 전화를 끊은 적도 있었어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요하게 상담사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죠. 콜센터 상담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만만한 상대였던가 봐요. 상대방의 인격을 짓밟아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겠죠.
 
그곳에서 버티려면 저 자신을 일과 분리해야 했어요. 혹은 나는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고 열심히 세뇌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저에게 욕을 하면 이 사람은 내가 아니라 회사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 사람은 나를 상담사라기보다는 자동응답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요. 혹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저 역시 똑같이 생각하는 거예요. 나도 진상고객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전화기 너머 고객은 인간쓰레기 어플이다. 나는 어플과 게임을 하고 있다. 감정통제를 해야 어플에게 이길 수 있다, 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그런 식으로 생각하려 해도 전화기 너머 진상고객은 통화 중에 말을 더듬거리고 하품을 하고 한숨을 내쉬는 저와 같은 인간이더라고요. 하지만 상담사는 말을 더듬거나 하품하고 한숨을 내쉬면 안 되잖아요. 일방적인 관계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성희롱을 당해도, 욕을 먹어도 참고 넘어가야 하니 홧병이 안 나면 이상한 거죠.
 
전화기 너머의 진상고객이 제가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멘탈이 털린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내가 모멸감을 느낄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확신하게 될 때 저는 무너져 내렸던 것 같아요. 지금 당장 헤드셋을 벗고 저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어요. 나는 너에게 이런 대접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소리쳐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무너짐도 잠시, 저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다는 듯 피에로의 미소를 띠고 출근했어요. 그곳을 그만두면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육체적으로 더 고된 일자리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진상고객에게 나도 너와 같은 인간이다. 나는 자동응답기가 아니다. , 봐라. 우리도 너처럼 살갗과 육체를 지닌 사람이다. 전화기 너머 우리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다. 우리에게도 너처럼 일상이란 것이 있다. 그들에게 콜센터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싶었던가 봐요.
 
소설 속에서 복수를 하니 기분이 어떠셨어요?
통쾌할 줄 알았는데 전혀요. 참담하고 슬펐어요. 진상고객과 똑같이 행동한 등장인물들도 저처럼 더 큰 슬픔과 불쾌감을 느꼈을 거예요.
 
 
한 달 먼저 출간된 『쇼룸』(민음사)은 어떤 소설인가요? 이케아가 배경이라고 하던데요.
이케아 광명점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해요. 주요 배경인 다이소와 고시원, 이케아 모두 제가 자주 머물렀던 공간이죠.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처럼 저도 고시원에서 오랫동안 살았어요. 몸만 뉘일 수 있는 좁은 고시원부터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웠던 여성전용고시원까지 수많은 고시원에 몸을 부렸죠. 『쇼룸』에 수록된 단편 『2층 여자들』은 여성전용고시원에 잠시 살았던 경험에서 나온 소설입니다.
 
원래 다이소가 제 아지트였어요. 다이소에 자주 가요. 살 게 없어도 그냥 가서 어슬렁거리죠. 이케아 개점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어요. 저에게 이케아는 다이소보다 좀 더 확장된 공간이었어요. 좀 더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장소였죠.
 
첫 개점일에 혼자서 이케아에 갔어요. 벌벌 떨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죠. 별거 있겠어? 생각했지만 막상 쇼룸이 눈앞에 펼쳐지자 제가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매장을 활보하고 있더라고요. 그 이후로 이케아에 자주 갔어요. 60여 개의 쇼룸을 돌아보고서 집에 돌아오면 시간이 자정이 넘거든요. 마치 유리 구두를 벗어던진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허탈하고 저의 집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화려한 쇼룸과 극명히 대비되어 제 삶의 공간이 더욱 누추하게 보이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이케아에 갔어요. 갈 때마다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쇼룸에서 우연히 만난 방문객들이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이케아 소파에 나란히 앉은 여대생들, 정장을 차려입은 육칠십대 커플, 어깨에 카메라를 둘러맨 여자. 그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줄줄이 떠오르더니 집에 오는 길에 더 뚜렷한 형체를 갖춰 갔어요. 지금 이곳, 이케아에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자. 주거난과 보금자리에 대한 욕망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가구도 사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자주 이케아에 가느냐고 묻더라고요. 원고를 출력해서 남편에게 건네주며 말했어요. 이거 쓰느라고. 그날 남편이 밤늦게까지 그 원고를 읽더라고요. 졸지 않고 읽는 것을 보니 재밌나 보다 생각하고 정리해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어요.
 
 
이케아라는 테마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케아에서 한 번도 가구를 구입하지는 않으셨다고요?
처음에는 분명히 가구를 사러 갔는데 결국 단 한 개도 구입하지 못했어요. 이케아 매장을 헤매고 다니느라고요. 그 안에서 저는 깊이 생각에 잠겼어요. 사랑과 결혼, 행복에 대해,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집을 꾸미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이케아 가구처럼 싼값에 소비되는 이 땅의 청춘들에 대해서요. 그 안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폐점시간이어서 늘 쫓기듯 나왔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늘 이야기들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빈집』의 경우 이케아 고양점 레스토랑에서 썼어요.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세 시간 정도 초고를 썼는데 여기서 뭐하시냐고 아무도 묻지 않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제가 이케아 진상고객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케아는 저에게 있어 공간에 대한 불안을 불러일으킨 공간이기도 했지만 소설을 쓰게 해준 공간이기도 하네요.
 
인생역정이 평범치 않습니다. 이십대에 신용불량자, 삼십대에 개인파산자를 거쳐 콜센터에서 일하는 중에 당선통보를 받아 소설가가 되셨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삶 속에서 소재를 찾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그런 편이에요. 『청춘 파산』도 자전적인 성격의 소설이고, 제가 남편과 함께 산 지 올해로 10년째인데 결혼식도 하지 못했고 1, 2년마다 반지하 집을 전전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한 집착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쇼룸』이라는 소설이 나왔을까 생각하게 돼요. 어린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에 쫓긴 것은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그런 경험이 작가로서의 저에게는 ‘빚’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부분이 있어요. 『쇼룸』에 수록된 단편 『세븐 어 클락』도 빚에 쫓기는 부부 이야기죠. 빚은 제가 평생 물고 늘어질 주제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단편 『쇼케이스』에는 저의 이야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정육점에서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쓰게 된 소설입니다.
예전에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제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폭풍우 앞에서 유연한 나무처럼 맞선다면 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처 입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회복탄력성을 갖추고 싶을 뿐이에요.
 
 
『청춘 파산』도 그랬지만 『콜센터』도 『쇼룸』도 어둡지 않습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본인의 성격이 반영된 것일까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성격이 낙천적인 편이에요. 제가 거쳐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상황이 너무 암울해서 저는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편이었어요. 다 잘 될 거야. 다 지나갈 거야. 일종의 염원이었던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비현실적인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견뎌내려면 ‘빛’이 필요했어요. 그곳을 보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거죠. 한 줄기 빛이라도 없다면 어떻게 버텨내겠어요. 아마도 제가 무의식중에 소설 속에도 그런 밝은 기운을 숨겨두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인간은 어둠속에서도 빛을 찾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빛이 있어야만 버텨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10 18일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었어요. 『콜센터』란 소설을 통해 독자분들이 상담사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상담사들에게 함부로 욕설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상담사들의 노고를 돌아보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저 역시 소설가로서 계속해서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에는 저 자신의 이야기도 포함되겠죠.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아요.
70세 현역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70세에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저도 궁금해요. 지켜봐주세요.
 
 
| 기사 및 사진제공_광화문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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