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경 청춘파산 [알바백서 청춘낙서] #2. 욕설 전화 한 통에 300원, 콜센터 상담원 문화




출처: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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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만났던 연희 언니는 대신 여자들은 감정적인 부분에서 착취를 당한다고 했다. 성희롱을 예사로 당하는 것보다는 몸이 아작 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면서.
                                                                 -『청춘 파산』에서 
 
헤드셋과 전화기, 여름에는 빵빵 흘러나오는 에어컨. 피자 콜센터에서 처음 일하던 날, 나는 부스에 앉아 룰루랄라 쾌재를 불렀다. 나가라고 할 때까지 일해야지.
육체노동의 고단함이라면 알 만큼 아는 나는 콜센터 상담원 일을 시작하면서 내심 자신이 있었다.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나, 까다로운 사장과 일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욕설을 듣더라도 얼굴 볼 일 없는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콜센터에서는 관리자와 말을 섞을 일이 별로 없었다. 내가 오주문을 내거나 고객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없는 한 말이다. 나만 잘하면 그야말로 프리랜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화 받는 콜센터 상담원만 감정 노동자가 아니었다. 백화점, 미용실에 근무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까다로운 사장과 마주해야 하는 대부분의 회사원들도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감정 노동자라고 할 수 있었다. 우스운 장면에서 웃지 않고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 아나운서도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감정 통제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과연 존재할까?
콜센터는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객을 대범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매장에서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하지 못할 소리를 전화기 너머의 인격체들은 툭툭 잘도 던졌다. 상담원은 대부분이 휴학 중인 대학생과 주부들이었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았다. 모두들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익숙해질 틈도 없이 얼굴이 바뀌곤 했다.
처음 욕을 먹었을 때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고객의 개인 정보를 노려보았다. 한 통의 전화에 주어지는 돈은 300원 정도였는데 그 돈이 이런 욕을 얻어먹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 통에 3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기꺼이 욕설 전화를 받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에 이런 하소연을 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욕설 전화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대부분은 상식적인 고객이고 100통 중 한두 통의 불량고객 전화를 왜 참아 내지 못하느냐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팔 수밖에. 일이 서툰 처음 일주일간이 힘들었을 뿐, 열심히 업무를 익힌 덕에 이후로는 웬만해선 욕먹을 일이 없었다. 가끔씩 신호 위반 과태료 고지서처럼 날아드는 욕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지만 불량고객의 전화를 받은 날은 집에 돌아와 녹초처럼 몸이 축 늘어지곤 했다. 육체노동을 한 날은 집에 돌아와 소설 쓰기에 더 집중해서 매달릴 수 있었는데 이상했다. 대부분의 동료들 역시 보이지 않는 상처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신의 소심한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기도 힘든 마음의 상처.
그로부터 두 달 후, 나는 얼굴 없는 고객에게 역시나 상처를 입었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하는지 그는 아주 길고 복잡한 주문을 했고 나는 그것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는 일부러 상담원을 약 올리려는 듯 주문을 여러 번 번복했고 신용카드 번호도 아주 빠르게 불러서 내가 한 번에 입력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오주문이 나면 어쩌지? 그럼 절반은 내가 물어줘야 하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주문할 거면 인터넷으로 할 것이지…… 오주문 나면 당신이 물어줄 거야?’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내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간 모양이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숨 쉬지 말고 하세요.
나는 위기를 잘 넘겼다. 아직 입안에 가득 남은 긴 한숨을 아주 조금씩 나눠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전화를 끊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딸꾹질이 나서 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잠시 앉아 있어야 했지만.
그리고 수십 통의 전화를 더 받고 하루를 마쳤다.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상담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성희롱하는 전화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 넘길 수 있었고 “평생 콜센터에서 일해라!”라고 말하는 고객에게 밝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고객님. 저는 이 일이 너무 적성에 잘 맞아서 평생 할 생각입니다.”라고 응수할 자신도 있었다.(실제로 이렇게 말했다간 클레임이 들어오겠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몇 달 뒤 누군가의 한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전화선 너머의 여자는 잔뜩 날선 목소리로 무언가를 요구했다. 눈치를 보니 이미 다른 상담원이 그녀를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불쾌한 말투로 명령하듯 반말을 했고 나는 왠지 쉽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매장으로 전화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를 쳤다.
“당신 정규직이야, 비정규직이야?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 같은 멍청한 직원은 당연히 비정규직이죠.”라고 고객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건만 나는 이렇게 되묻고 말았다.
“제가 왜 그것까지 말해야 하죠?
한순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나는 오래도록 시달림을 받았고 그 고객에게 녹음기처럼 수십 번의 사과 인사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를 반복해야 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선배 상담사의 추측대로 그 여자가 혹시 전직 콜센터 상담원이 아닐까 생각했고(콜센터 최고 불량고객은 동종업계 종사자라는 속설이 있다.) 상대도 내가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한다는 것을 잘 알 텐데 왜 수십 번이나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일까, 자존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선배 상담사의 말대로 그녀가 전직 콜센터 상담원이라면 콜센터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보다 더 잔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고 작은 새우끼리 물어뜯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새우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고래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새우를 물어뜯어 봤자 같이 죽거나 자신만 더 깊이 상처 입을 뿐이다. 새우 싸움이 끝난 후 싱긋 웃으며 두 마리를 어망에 넣는 것은 알고 보니 고래가 아닌 어부. 어부의 비웃음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단지 내가 피해망상 환자이기 때문인 걸까.
 
[소설]  청춘 파산
김의경 | 민음사
2014.03.07

김의경의『청춘 파산』
저자 김의경은 1978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4년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청춘 파산』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덧글

  • 작은울 2014/04/22 11:32 # 답글

    감정노동은 여성이 더 많이 하고 육체노동은 남자가 더 많이 하는건 사실
  • 이잉 2015/04/23 19:54 # 삭제 답글

    이글보고 한참 울었네요 예전생각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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