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교보문고 북뉴스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orderclick=JAc&sntn_id=8724&Kc=KDBLCNbooknews
[알바백서 청춘낙서] #1. 반나절의 친구,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
- 2014.04.14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엑스트라 따위가 아니었다. 아무리 삼류 영화라 할지라도 나는 주연을 맡고 싶었다. 20대 초반은 누구나 세상의 주역을 꿈꾸는 시기 아닌가.”
- 『청춘 파산』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친구가 넘쳐 나는 세상.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나 가족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는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 간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결혼식을 앞두고 갑자기 동창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도 종종 듣는다. 느닷없이 되새김질한 친분으로 결혼식에 와 줄 친구를 동원하는 것보다 적당한 일당을 지급하고 반나절의 친구를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 초대할 수 있는 용기가 사라지고 있는 닫혀 버린 세상.
결혼식에 기꺼이 와줄 친구를 만드는 것이 수십 명의 아르바이트생에게 4~5만원의 일당을 지급하는 것보다 번거롭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타인으로 가득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 공허하다는 것은 왜 모를까. 낯선 타인으로 가득한 결혼식, 금세 피고 지는 벚꽃의 화려함보다도 공허하다. 보여 주기가 그토록 중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매일 보는 스스로의 공허한 내면은 어떻게 견뎌 내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제법 체계를 갖춘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는 7년 전만 해도 꽤나 제멋대로였다. 대체로 심부름 대행 센터를 하던 사람들이 운영하는 모양이었는데 페이도 기준이 없어서 얼마만큼의 돈을 받는가는 그야말로 운에 좌우되었다. 그래도 지금에 비하면 그 사업은 나름 소박하고 순수한 의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의뢰인은 절실한 마음에 일을 의뢰했고 아르바이트생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 업체에 등록해 놓으면 가끔씩 일이 주어지곤 했다. 대체로 결혼식 하객, 아이의 급식 당번으로 동원될 이모 같은 역할로(엄마 나이는 아니었으므로) 그리 어렵지 않은, 게다가 보람도 느껴지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한 20대 후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나는 한 결혼식 하객으로 동원되었다. 나는 내게 있는 유일한 정장인 감색 슈트를 입고 강남에 위치한 예식장으로 향했다. 지인들의 결혼식과는 달리 이번 예식장 방문은 신이 나기까지 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나에게 결혼 축의금은 부담스러웠다. 5월이 되면 서른 살이 넘은 선배들의 결혼식이 급격히 늘어나 때로는 자취방에 있으면서도 지방에 있다는 식의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박 실장에게서 5만 원의 축의금까지 받은 마당에 눈치 볼 것은 전혀 없었다.
나는 박 실장의 말대로 결혼식이 시작되기 20분 전에 예식장에 도착해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신부는 얼굴이 조그맣고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간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다.
“지수야, 축하해!”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면사포를 쓴 신부가 잠시 머뭇거려서 나는 내가 신부 대기실을 잘못 찾았나 싶어 소스라쳤지만 그녀는 금세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고마워. 이게 얼마만이야. 너무 예뻐졌다.”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내 얼굴은 조금 경직되었다. 신부 역시 긴장해서인지 표정이 어색했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 도착한 친구인 것 같았다.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아줌마가 다가와 언제 적 친구냐고 물었다.
“어머니, 저 기억 안 나세요? 중학교 때 지수 짝이었어요. 집에도 몇 번 놀러 갔었는데.”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기억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신부와 사진을 한 방 찍고 신부 근처에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신부의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나는 그들 중 일부는 나와 같은 알바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이 여자는 알바생인 것 같다가도 금세 친구 같았으며 저 여자는 친구 같은데 어느 순간 알바생 같았다.
신부 입장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신부가 긴장했는지 발을 헛디뎠다. 그녀가 곁에 있던 내 팔을 덥석 움켜쥐었다. 하나뿐인 내 정장에는 선명한 구김이 갔다.
나는 신부를 부축한 후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꽤나 고급스런 호텔 예식장이었다. 신랑신부가 올라가는 무대가 중앙에 따로 있었고 거대한 얼음조각상이 세 개나 보였다. 식사도 수준급이었다. 한 그릇짜리 갈비탕이 아니라 일인당 6만 원은 족히 넘을 고급 요리였다. 이런 고급스러운 식사는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가 신부 친구라는 신분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먹는 속도를 늦추었다. 신랑 신부의 폐백 드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고 신랑 신부의 차가 공항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손을 흔드는 것에서 그날의 일이 끝났다.
요즘처럼 벚꽃 축제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그날 내 팔을 움켜쥐었던 신부가 떠오른다. 벚꽃보다 아름다웠던 신부도 벚꽃이 피는 요즘, 한 번쯤은 반나절짜리 친구를 떠올릴까.
| [소설] 청춘 파산 김의경 | 민음사 2014.03.07 |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