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현대의 예방접종 불용론과 구한말 :천연두 대처법



2011년 봄이던가요. 한 블로그 사이트의 육아 밸리에서 이슈화되었던 예방접종 불용론에 대한 글들을 보다가 그들의 행위가 구한말의 행태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져서 이걸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한말 때는 인구는 증가하는데 국가의 행정력은 미약하고 거기다 서구의 여러 가지 사상과 문물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엄청난 혼란을 겪던 시절이죠. 그런 만큼 전염병도 크게 돌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역시 예전에는 호환, 마마… 요즘 아이들은 불법 불량 비디오… 요즘에는 비디오가 잘 안 나오니 익숙하지 않을 것 같네요.
 
아무튼 거기에 나오는 마마라는 것, 그러니까 천연두가 있지요. 이 말은 원래 별성마마에서 마마로 줄었는데 이 천연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걸리면 다수가 죽어나갔습니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라서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천연두에 걸려 죽은 사례도 있지요. 천연두가 창궐하면 민간에서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그 무당들은 귀신에게 바친다며 돈과 음식 꾸러미가 든 자루를 끌어 모았죠.
 

 
다른 방법으로는 먼저 천연두에 걸린 아이의 딱지를 모아서 봉투에 담아뒀다가 절에 가져가 태우면서 자식의 생존에 대해 감사하거나 다른 아이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방법이 있었죠. 또 가시가 효험이 있다고 해서 집 처마 위나 대문 위쪽에 올려놓고 마마신이 들어오지 않도록 기원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효과가 있을 리가 없죠. 1903년 서울에 천연두가 퍼졌을 때 왕실에까지 천연두가 퍼져서, 언더우드의 기록에 따르면 왕실 자체의 출입을 폐쇄하고 용하다는 무당을 궁궐 내로 불러다가 굿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외국인도 별반 다를 게 없어서 한성전기회사에서 일하는 잉글리시라는 사람의 아내는 남편이 출장 나가 있는 사이에 천연두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다가 지인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이로 인해 몰골이 처참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윌터 존스라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는 고베에서 아내를 종기 때문에 잃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천연두에 걸려 아무것도 못해보고 한 달 뒤에 사망했지요.
 
이 천연두가 굿 이외에는 아주 방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1886년 알렌 공사가 작성한 자료에는 중국식으로 환자의 고름에서 빼낸 농포를 접종해서 전근대적인 예방접종을 하기도 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소년은 왼쪽 콧구멍에 소녀는 오른쪽 콧구멍에 놓았다고 하는군요. 보통 이렇게 접종한 아이들은 60~70% 정도 되는데 이 아이들의 생존율은 의외로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접종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1%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서양의 의술도 같이 들어왔습니다. 1879년 지석영은 서구식 종두법을 우리에게 도입했지요.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서울에서 천연두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만 명에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천연두는 큰 전염병이어서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서울의 인구를 14만 명 정도로 보는데 그중에 이미 이전에 병에 걸려 면역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걸렸지만 살아난 사람도 있을 것이니 6만 명의 사망자라 한다면 서울에 있는 사람 중 거의 대부분이 앓아누웠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요.
 

 
어쨌거나 지석영은 부산에 있는 일본 해군병원인 제생의원에서 종두법을 배우고 충주에서 한국 최초로 종두를 실시했습니다만 무슨 자연주의 어쩌고 하는 사람들처럼 그때도 그러한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인지하는 터라 그 당시 사람들은 그 당시 수준에 맞게 이 주사를 맞으면 소의 영이 몸에 들어오게 된다고 생각하거나 소의 몸에서 추출한 것이기에 사람의 몸을 소로 변화시킨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으로 종두 주사를 거부했습니다. 이건 한국인뿐만 아니라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종두법이 시작되었을 때, 악마가 사람을 소로 만들기 위한 수작이라는 소문도 퍼졌었죠.
 
이것 이외에도 퍼져 있는 미신들은 주로 소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소에게 병원균을 심어 병이 더 커져 있는 고름을 주사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고름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접종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이번에 퍼진 소문처럼 주사약에 페놀이 있다는 둥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고름이라는 것을 병의 근원으로 보고 과학적 원리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병인데 왜 병을 넣느냐는 자신의 상식 범위에서 생각을 한 것이었죠. 몇백 년이 지나도 이런 무지는 사라지지 않네요.
 
덕분에 지석영은 이런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사람 하나하나를 잡고 모두에게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설득은 효과를 거둬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받았고 병이 퍼졌을 때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석영은 이후 갑신정변에 의한 정치적 음모에 의해 귀양을 떠나기도 했습니다만 1890년대 천연두에 대한 포고령이 반포되고 1899년 경성의학교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천연두 예방에 많은 힘을 기울일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천연두를 완벽하게 잡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1899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서양인 의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 예방접종을 도입하려고 노력해왔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이를 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단 한 명의 어린이에게도 예방접종을 하지 못했다.
 
1899년 정도 되면 예방접종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퍼져 있는 상황이었고 성인의 경우에 간혹 스스로 예방접종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의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예방접종은 단 한 건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즉 예방접종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예방접종에 의해 살아나고, 예방접종 이후 생존율이 늘었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자기 자식에게 소 고름에서 나온 주사를 놓기에는 께름칙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 천연두는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1979년 완전 박멸되었다는 선언이 나왔는데 최근에는 이게 바이오 테러나 생화학전에 이용될 소지가 크다고 하죠? 박멸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치료약이 충분치 않아 의외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참 인간이라는 것이 지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자료들을 보면서 오래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것이 참 변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구만 달라져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의 수준만 있을 뿐, 거기서 거기라는 거죠. 자연주의 운운하지만 그들의 인식은 구한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입니다.
 
 
[역사/문화]  조선의 속사정
권우현 | 원고지와만년필
2013.04.15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 '조선의 속사정'
조선시대에도 출산휴가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만우절이? 예나 지금이나 술이 문제였다고? 애연자와 혐연자의 담배논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노비에서 왕까지, 조선을 이루었던 모든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진정한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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