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4)

융,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3)

7. 외향적 직관형

 

이 형은 외향적 감각형처럼 외적 상황에 강하게 의존하지만 감각형하고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이 형은 현실의 감각적 가치가 아니라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에 의미를 둡니다. 말하자면 싹트는 것 또는 미래가 약속된 것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지되고 있으며 안정되고 고정된 여건에선 ‘직관’이란 것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다닙니다. 보수적인 상황과 여건 속에서 이 유형은 질식하고 고사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굉장히 냉정하여 어떤 가능성을 보인 것이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거나 더 이상의 발전이 예감되지 않으면 미련없이 그것을 내버리고 떠납니다. 그러나 어떤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이 유형은 그것에 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크고 새로운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면 이전의 것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고 명확한데도 그것을 감옥으로 여기고 숨막혀 하며 그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나버립니다. 이성도 감정도 그를 말리거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게 하지 못합니다.

사고와 감정은 직관의 뒤를 따릅니다. 이것들이 충분히 발달해 있다면 직관에 판단력을 주어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융의 시대로 생각해볼 때), 자신의 모든 사회적 가능성을 동원해 어떤 가능성을 가진 남성을 찾아낼 줄 알지만, 이 역시 더욱 커다란 가능성을 지닌 남성이 나타나면 이전의 남성에게 별다른 미련을 두지 않고 그 즉시 떠나버립니다.

이 유형의 또 다른 특징으로 - 이기적인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을 때 - 사람을 복돋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조직에 있다면, 주위 사람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직감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용기를 주거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에서 그를 따라갈 만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결국 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나버립니다. 그렇게 자신이 이루어내는 상황은 결국 자신의 숨통을 조이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그 자신은 너무 쉽게 자신의 삶을 이 일 저 일에 허비해버립니다. 주변을 복돋우지만 그 자신에겐 결국 남는 게 없게 되는 것입니다. 금방 씨를 뿌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좇기 때문에 그 씨를 뿌린 결실은 다른 사람이 거두게 됩니다.

이들을 억압은 현실 감각입니다. 현실감각은 자신을 유지하게 하고 지키게 하지만 이들은 늘 그것은 제쳐두고 자신 외부의 새로운 가능성을 좇기에 그러합니다. 이런 억압이 분출되면 그 자신의 직관이 흐트러지고, 억압된 무의식은 이 유형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성에게 집착하거나 일종의 강박적인 상태로 의식을 몰아가면서 보상받습니다.

직관 이외의 다른 감정은 직관을 따라가는 열등한 기능이고 그래서 이 기능들이 분출되는 형태 또한 열등하기에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세미나 중간에 강한백조님께서 ‘히딩크’가 그런 인물이지 않은가, 하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제가 히딩크를 한 번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것 같아 그를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볼 때, 최소한 일에 있어선 자신의 직관에 사고와 감정이 적절하게 발전하여 보조를 맞춰주는 긍정적인 형태이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8. 내향적 직관형

 

이들은 신비한 몽상가 겸 예언자 그리고 환상가 겸 예술가(야콥 뵈메, 알렉스 그레이 등)입니다.

이 유형은 그 자신의 내면이 ‘직관’을 감지하려는 성향 자체에 집중하려 합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관의 ‘감지’이고, 만약 예술가라면 감지한 것을 형상화하고 표현합니다.

순수한 내향적 직관형의 경우 직관으로 감지하는 그 자체에만 집중하지만, 여기에 일종의 도덕이나 이념이 끼어들 경우 자신의 환상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즉, ‘이 비전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비전이 나 또는 세계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어쨌거나 이 유형이 보는 비전은 기본적으로 환상입니다. 그러므로 실제 주체의 삶이 될 수는 없다는 인식을 그 스스로도 -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비전을 실제의 삶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그 스스로의 내면과 행위에서만 그러합니다. 그래서 내적으로는 비전과 자신의 삶을 합치시키지만 외적인 현실엔 전혀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과 비전을 말하지만 너무나 주관적인 표현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융은 이 유형을 ‘황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라고 표현합니다.

이들은 객체가 직접적으로 주는 감각을 가장 많이 억압합니다. 그래서 이런 억압이 분출될 때, 그 스스로의 내적 비전으로 의식이 완전히 승화되는 것을 막습니다. 오직 자신의 직관이 감지하는 비전으로만 승화되려는 의식의 태도를 차단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향적 감각형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지만, 이 유형은 그들의 태도만큼 ‘능숙하고 완만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외부, 즉 객체들이 자신에게 주는 것을 너무 억압합니다. 그래서 억압된 무의식은 이 유형이 현실에 객체에 구속되도록 - 의식은 전혀 바라는 바가 아니므로 고통을 받는 형태로 - 만들어버림으로써 보상받습니다.

 

 

마치면서

 

이로써 간략하게나마 융이 설한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풀어보았습니다. 이는 저 개인의 해석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이 책을 읽고 이해를 가지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이 책이 누가 읽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그것보단 스스로 이해를 가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 유형들을 다양한 직업에 대입시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척 보기에 예술가 타입은 아무래도 4, 5, 6, 8번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1번인 외향적 사고형이 예술가라고 가정해본다면 어떨까요? 이 사람은 스스로의 예술적 성취는 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기 분야에 체계를 세우고 역사를 정립하고 기법을 정리하는 등의 일에는 뛰어난 성취를 보일 것입니다.

또 다르게는 8번 내향적 직관형이 어떤 식으로든 과학을 전공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이 보는 비전이 과학과 일치함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르게는 과학은 이 드넓은 환상의 세계를 감지할 수 없는 미개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내향적 사고형의 철학자가 외향적 사고형의 동업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향적 사고형의 현실에 대한 무지를 감정이 충분히 발달한 외향적 사고형이 보완하면서 그 내향적 사고형이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퍼트릴 수 있도록 외적으로 정립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반대로 이 어리숙한 내향적 사고형이 한없이 어리석게 보여 이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게 아니라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해낼 수 있겠습니다만, 이 세미나로 인해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표현들을 가지는데, 그리고 어떤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y 작은울 | 2009/11/21 01:03 | 소놀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융,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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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외향적 감각형

 

외향적 감각형은 객체 그 자체가 주는 감각의 강도를 따라가는 동시에, 객관적 자극을 주관적 감각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외부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 능력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예술이라든지)가 있다면 이들은 눈에 띠고 이들의 비합리성을 가려줍니다.

한 예로 벽에 점이 하나 있다고 할 때, 이 유형은 이것에 기이한 감동을 느끼고 그 주관적 감동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내곤 합니다. 좀 다르게는 파리의 움직임이나 또는 노랭이의 느릿한 움직임에 기이한 감동을 느끼며 그와 관련한 것을 표현해내기도 하는 등, 이것은 너무나 독특하기에 사람들의 눈에 확 띠게 됩니다.

이들은 대상에 따른 그 각각의 객체와 관련을 맺지 않고, 그 대상들에 대한 내부의 주관적 감각과 관계를 맺습니다.

융은 이 유형이 객체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관적 견해가 가로채 간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론 맞아서 아픈 것이지만 자신의 감각에 감정이 따라가기에, 이게 너무 강해지면 외부의 실제적인 영향이 완전히 무시되고 자신의 주관적 견해가 실제 현실을 완전히 덮어버리는데, 그러면 고통과 쾌락의 뒤바뀜 또는 자신만의 이해가 진실의 이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예술적인 표현능력이 없다면 더욱 골치 아파집니다. 아까 말한 벽의 점 또는 일부 곤충과 동물에서 느끼는 기묘한 느낌과 감동을 표현하지 못해, 그것들이 분출되지 못하면 그 주관적 감정이 자신을 완전히 뒤덮게 되고 그러면 현실과 주관적 감정의 경계가 더 빨리 무너지고 이는 온갖 정신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6. 내향적 감각형

 

객관적 사실 감각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를 이유로 어떤 책에선 이들을 현실주의자라고도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현실‘감각’주의자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 유형의 모든 것은 감각을 통해 얻어지고, 그의 관심분야에 들어오는 모든 새로운 대상도 감각을 통해 얻어집니다. 그렇게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감각의 목적에 이바지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이 유형은 현실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론 다릅니다. 합리적 사건 만큼이나 비합리적 우연의 감각도 현실로 받아들이고 굴복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융은 '굴복한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곧 감각이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나 크기에 감정과 사고가 감각에 굴복한다는 뜻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몸이 허해 헛것을 봐도 그런 것을 실제라고 믿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이 유형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만이 중요하며 반성의 경향이나 지배의 의도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객체를 감지하고 감흥을 느끼며 가능하면 즐기려고 노력하는데, 밉살스럽지 않고 호감을 주며 활기찬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쾌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강렬한 감각을 원합니다. 외부에서 오는 강렬한 감각이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그 다음에야 거기에 대한 사고가 따라오는 형태입니다.

이념적 이상은 없고 만약 이 유형이 가진 이상을 꼭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실제에 대한 감각적 체험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현실에 대해 저항해야 할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감각이 너무 강해지면 직관과 사고가 억압당하며(직관과 사고 또한 자연스럽게 발현되어야할 본성이라고 볼 때, 감각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강해지면 이들은 억압되고 그래서 뒤틀리며 기이한 방향으로 보상분출받게 됩니다), 그러면 기상천외한 억측(의처, 의부증이라든지, 망상이라든지)이 생기고 또한 온갖 종류의 공포와 강박이 생깁니다.

그래서 객체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것이 주는 느낌과 감각만이 중요해져 자칫 저급한 쾌락주의자로 빠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by 작은울 | 2009/11/20 00:00 | 소놀이야기 | 트랙백(1) | 덧글(0)

융,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2)

11월의 소놀 - 작은 세미나; 융, 인간의 유형(1)


3. 외향적 감정형

 

이 유형은 여성에게서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이 유형은 감정의 표준을 따라가면 사는데, 따라서 주관적인 것은 억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은 객관적 상황의 보편적 가치에 일치하며, 이것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배우자 선택입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남성을 사랑하는데, 이것은 조건을 따져 자신의 안위를 보살피고자하는 계산적인 생각이 아니라 적당한 남성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아내이며 좋은 어머니의 역할을 합니다.

이 유형은 감정을 따라가는데, 이 감정을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사고입니다.

감정이 언제나 우선순위이고, 따라서 대상이 있으면 대상에 감정을 느끼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에 사고가 따라갑니다. 느낌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선 생각을 거부하고, 그래서 제 아무리 명확한 논리로 결론을 이끌어낼지라도 자신의 감정에 방해가 된다면 거부한다고 합니다.

이 유형이 만약 자아가 약하면 대상에 자아가 흡수되기 쉽다고 하는데, 대상이 있고 감정이 일어나고 그 감정에 대해 사고가 일어나기에 '사고'가 약해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즉, 결론 내리지 못하고 느낌만 따라다니면서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자아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변덕쟁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게 심화되면 해리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결국 각 상황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억압에 대한 일종의 보상입니다. 이 보상은 무의식에 대한 보상이지 현실에 대한 보상은 아닙니다. 무의식이 보상 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현실의 의식은 오히려 곤란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억압된 무의식은 반발하므로 각각의 상황마다 더욱 과장된 행동을 하고 그에 뒤따르는 사고를 하게 되는데, 이는 곧바로 후회로 연결되고 이 또한 일종의 악순환이 되어 이 유형으로 하여금 강박과 신경증을 유발케 합니다..

 

 

4. 내향적 감정형

 

말이 없고, 사귀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렵고, 어린애나 평범의 가면 뒤에 숨어 있고, 침울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관적 감정에 이끌리므로 외부엔 진정한 동기가 숨겨져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스타일입니다.

이 유형은 그 자신의 감정에 가장 강하게 이끌리기에 남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보이는데, 그래서 마치 감정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의 감정은 스스로의 내면으로 매우 깊게 전개되어 간다고 합니다.

이들의 억압은 외부와의 소통이며, 외부 사람들은 이 유형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도도해 보인다는 등의 오해를 하게 되어 사람들은 이 유형을 괴짜같이 대하고, 이런 외적현실은 이 유형의 사람을 억압합니다. 이런 억압 또한 숨 쉴 통로를 찾게 되는데, 이 경우 형태를 규정짓기 힘든 지배욕 또는 열정이 되어 은밀하게 표출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자식을 둔 여성의 경우 자식을 통해 표출된다는데, 자식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 이는 자식에게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 자식을 통해(은밀하게) 외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감정이 자신을 충족하는 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외부 억압으로 인해 외적으로 자신이 남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게 되면 무의식적 보상으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게 됩니다. 즉, 지배욕과 권력욕으로 표출되며 그렇게 되면 드디어 외적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매우 뒤틀려 남들이 자신에게 계략을 꾸밀 것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그동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 때문이기도 한데, 자신은 외적 현실에 대해 완전히 신경을 끊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언제나 내부의 감정을 따라가기에 쉽게 상대를 오해하여 피해의식을 가지는 등의 망상 증세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선수칠 계략을 세우고 열세인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온갖 비열한 계획이나 미덕의 남용도 서슴지 않지만, 그는 언제나 다수에 대항하는 개인이므로 지치고 신경쇠약이 일어나며 그로인해 신체 이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by 작은울 | 2009/11/19 00:03 | 소놀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11월의 소놀 - 작은 세미나; 융, 인간의 유형(1)

칼 구스타프 융의 인간의 8가지 유형

 

이것은 제가 융의 분석 심리학에 대해 잘 알아서 세미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조금 더 했다면 아주 그럴듯한 심리학 강의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사실 융에 대한 공부는 하다 말아서 심리학에 대한 세미나는 제가 할 실력이 되지 않네요. 다만 융이 말한 인간의 유형은 우리가 소설을 써 나가는 것에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이렇게 주제를 정해보았습니다.

소설을 쓰면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인물의 표현에 대해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지요. 인물이 어떤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이 인물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해, 작가 자신의 경험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라면 어떤 장벽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장벽에 부딪혔을 때 이런 인간의 유형을 알고 있다면 소설을 풀어나가는 것에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인간의 유형으로 소설을 써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편을 쓴다면 이 유형들 중 하나 또는 둘 정도로 등장시킬 수 있을 것이고, 장편을 쓴다면 이 모든 유형의 인물들을 등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발자크 같은 사람이 이런 방법을 잘 썼다고 하는데, 우리가 발자크가 될 필요는 없지만 나중에라도 이런 유형을 가지고 시험해본다면 소설을 쓰는 것에 작으나마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이 유형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될 수 있으면 융 전집 1권을 읽길 권합니다. 오늘 제가 하는 세미나는 제가 정확하게 융을 이해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나름의 이해를 풀어놓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S' 출판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집이라고 내놨고, 거기다 여러 사람이 감수를 봤다는데, 도대체가 쉬운 말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왕 냈으면 전문가보다는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써놨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이 그럴 생각이 없었든, 그럴 능력이 없었든,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불만스럽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이 전집 중 1권을 읽고 이해한 대로의 ‘인간의 유형’에 대해 간략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외향형과 내향형

 

융은 자신의 임상을 통해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을 여덟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폐쇄적이고 속을 알 수 없고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방적이고 사교적이며 명랑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을 퍼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반적인 외향형과 내향형이 갈립니다.

그리고 그 각각에서 사고, 감정, 감각, 직관형으로 나뉩니다.

 

 

1. 외향적 사고형

이들에게 가장 우선되는 것은 ‘사고’이고, 주로 남성에게서 많이 보이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객관적 사실과 보편타당한 관념에 방향을 맞추는 지적 추리에 의존하여 전체적인 삶을 표현하는 사람이며, 어떤 종류의 법칙, 즉 외적 현실에 대한 법칙을 가지고서 그 지적인 공식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 법칙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현실의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이 공식에 비추어 일종의 기준이 생겨나는데, 선악이나 미추, 시비가 자신의 지적 공식의 기준에 달려 있습니다.

 

융은 이 형의 한 축으로 다윈을 듭니다. 이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모든 외향적 사고형이 다윈 같진 않습니다. 이들은 충분히 넓게 자신의 지식의 범위를 넓히고 고증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 즉, 지적 범위가 협소한 사람은 불평가, 궤변가, 자기만 옳은 비판가가 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세운 외적 체계가 정밀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초라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거기다 이것은 다윈 같이 어떤 과학에 관련한 사례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규범 즉, 예의라거나 도덕 같은 것에도 해당이 됩니다.

 

이 유형은 종교적 경험이나 몽상에 대한 열정 같은 비합리적 형태들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절대적이거나 환상적인 것들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뿌리 깊은 본성이므로 실제론 말살되는 게 아니라 억압됩니다. 억압이 있더라도 감정이 충분히 강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실제 이들은 감정이 열등합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이들에게 가장 우선되는 것은 ‘사고’이고, 감정은 이 사고가 일어난 다음에야 그 뒤를 따릅니다. 즉, 대상이 있고 대상에 대한 사고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사고에 대한 감정이 일어나는데, 이 감정은 사고에 뒤따르는 감정이지 대상에 대한 감정은 아닙니다. 그래서 융은(또는 이 책은) 이들의 감정을 ‘열등’하다고 표현합니다. 감정은 약하고 매우 여린 상태이며, 덜 자란 어린애 같은 상태입니다. 오직 사고에 대해 부수적인 기능을 할 뿐이지요.

 

한 예로 어떤 영화를 보면 자신의 사상 또는 학설을 열정적으로 발산하는 과학자와 그를 사랑하는 어떤 여자가 나오는데, 영화라서 그런지 실제 그런 일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겨납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 외향적 사고형의 과학자가 상처받은 자신의 감정을 조화롭게 극복하지 못할 때 흔히 보는 안타까운 엔딩이 생기고, 그 상처를 조화롭게 극복한다면 인간적인 성숙이 일어나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 일본 만화 같은 데서 가끔 나오는데 - 아주 저명한 과학자 둘이 학술적인 토론으로 시작해서 감정적인 싸움으로 발전해 서로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감정이 보조적이며 미성숙하고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예민하며 감정적인 상처를 받았을 때 매우 공격적이 됩니다.

 

어쨌거나 만약 이들의 감정이 조화롭게 성숙되지 않으면 자신의 이상 즉, 자신의 지적 공식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배재되고 개인적 관심이 사라집니다. 집안에선 냉혈한에다 폭군이기까지 하지만 외부에선 칭송받는 사람들이 이런 타입이다.

 

반복해서 말했다시피 이들의 감정은 유약하고 예민해 자신의 공식을 누가 반대하면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그래서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반대의견을 악의로 받아들이고 공격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매우 날카롭기까지 하지요. 감정이 열등하므로 상처받고 원한을 품는 일이 많습니다. 목적을 위해 그러니까 자신의 지적 공식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 약한 감정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비열해지기까지 합니다. 때로는 과학적 증거를 조작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또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기적이나 종교 등을 배격합니다. 외적 현실에 대한 사고가 언제나 우선하기에 절대에 대한 갈망이나 순수하게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감정은 실제로 억압됩니다. 안 그래도 불구인 감정이 계속해서 더욱 억압되는데, 사실 그러한 감정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이라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억눌리기만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일종의 보상 작용이기도 하며, 억눌린 감정의 분출구가 생기는데, 이것은 흔히 말하는 공돌이의 취미 같은 것과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여리고 어린 감정이 만족할 만한 취미를 가지며 그를 통해 억눌린 감정은 약간이나마 숨 쉴 구멍을 찾습니다.

 

 

2. 내향적 사고형

 

이들의 대표적 유형으로 융은 칸트나 니체를 듭니다. 이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이들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전문가이신 은휘님께 질문하도록 하십시오^^.

 

외향적 사고형인 다윈은 객관적 사실의 넓은 지평으로 돌진하는데 반해 내향적 사고형인 칸트는 인식 자체를 비판하고 나섭니다. 외향적 사고형이 외부 현실의 체계를 세운다면 내향적 사고형은 그런 외적 체계가 일어나게 되는 내적인 근원을 탐구하지요.

 

이 유형 역시 사고가 우위를 차지하고 이념의 영향을 받지만 외향적 사고형처럼 객관적 토대가 아닌 주관적 토대에서 비롯됩니다. 외향적 사고형처럼 자신의 이념을 따라가지만 외부가 아닌 내부로 가며 깊이를 추구하지 넓이를 추구하진 않습니다.

 

이 유형을 억누르는 것은 외적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이들이 자신의 이념 추구에 빠져 있을 때, 만약 외부에서 일종의 착취가 일어나도 이들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더 쉬운 예로 내향적 사고형이 월세로 사는 집에 주인이 들어와 아무 이유도 없이 “다음 달부터는 월세를 두 배로 올리겠다.”, 라고 말해도 그는 자신의 이념을 추구하느라 정신이 없어 집주인이 그냥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현실적 어려움은 결국엔 자신의 내적 추구마저도 헝클어지게 만들지요. 이는 외적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내적 추구에 매달리기도 하지요.

 

이 유형은 자기 내면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스타일이라 그 내면에서는 제한 없이 모든 것을 허용합니다. 그 어떤 위험한 생각이나 혁명적 생각도 타인의 감정이 상하거나 말거나 모두 허용하지만, 그것이 외적 현실이 될 상황이 닥치면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내면의 깊이이고 자신만의 이념체계이지 외부의 실현이 아니므로 현실에서의 반향을 그는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의 현실에 대한 두려움, 현실감각 결여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반향은 자신의 이념체계 구축에 방해가 된다는 걸 알기에 그런 반향이 오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 유형이 외적 현실에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타당한 것이 타인에게도 충분히 타당한지 확신하지 못하며, 그래서 자신의 작업에 온갖 첨가, 제약, 의심 등으로 스스로 힘들어지고 이는 강박으로 발전해 자신의 이념 체계를 충분히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억압과 강박으로 인해 이 유형은 외로워집니다. 이것은 악순환으로 발전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우연히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면 경솔한 자기과신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 외엔 관심이 없어 놀랄 만큼 순진하며, 사람을 싫어하는 어린애 같은 정서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분야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외적 현실의 무지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 격분해서 신랄하고도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끌려들어갑니다. 그렇게나 격분하는 이유는 역시 외향적 사고형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열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형이 자신의 사고가 강화되면 신념들이 더 경직되고 완고해져 더욱 개인적이고 독선적이 됩니다. 사상이 깊어지더라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외부에선 더욱 호감을 잃어 결국 더욱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갈 뿐입니다.

 

감정이 열등하므로 비판을 견디지 못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비판은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여 화를 냅니다. 외부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억압으로 발전하고 무의식을 자극해 그는 자신의 주관적 진실과 무의식적 억압의 분출이 일으킨 자신의 모습을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by 작은울 | 2009/11/17 23:24 | 소놀이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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